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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성장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

by 어제보다나은나 2020. 3. 11.

2:21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22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우리는  에베소서 2 10절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분이 어떠한지 깨달았습니다. 

2: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제 엡2:10에서 말씀하시는 선한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아래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1) 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함에 따라 권능으로 너희를 굳게 세우실 분 즉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은밀히 간직되어 왔으나

26 이제는 밝히 드러났으며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언자들의 성경 기록들을 통해 믿음에 순종하게 하려고 모든 민족들에게 알려지게 된 신비의 계시에 따라 너희를 굳게 세우실 분

 

2) 고전2:6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거니와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아무 쓸모없게 될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

7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3) 1:3 하나님 곧 우리 []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4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4) 3:9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 목적은 그분께서 이제 교회를 사용하사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들과 권능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11 이것은 곧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5) 1:25 내가 교회의 사역자가 된 것은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려 함이니라.

26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2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6) 딤후1:9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요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른 것이니라. 그 은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으나

10 이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분명히 드러났으니 그분께서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7)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진리를 인정함에 따라

2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

3 자신의 말씀은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명령에 따라 내게 맡겨진 복음 선포를 통하여 정하신 때에 드러내셨느니라.

 

8) 벧전1:20 참으로 그분께서는 세상의 창건 이전에 미리 정하여졌으되 이 마지막 때에 너희를 위해 드러나셨으며

21너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시고 그분에게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은 너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라.

 

위 성경 구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언급되고 있습니다. 

1) 세상이 생기기 전에, 세상의 창건 이전에

2) 은밀히 간직되어, 감추어져 온

3) 드러났으며, 알려지게, 알게 하려, 신비의 계시(뚜껑이 열림)

 

이것들을 한 마디로 하면,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하나님 안에 뭔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이글거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성경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복음 또는 신비, 영원한 목적, 지혜, 경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니까? 

예수님께서 그것을 요한복음 17장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드린 기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무엇을 하셨을까요?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영광을 나누었습니다.

17:5  [아버지],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이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또한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사랑의 사귐이 있었습니다.

17:24 [아버지],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친히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

 

창세전에 그렇게 영광스러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던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이글거렸던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17:21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17: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나니 이것은 그들이 하나 안에서 완전해지게 하려 함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17:24 [아버지],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친히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

 

창세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함께 누리던 영광스러운 교제를 더욱 확장하기를 갈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랑을 함께 나눌 많은 사람들을 원하셨습니다.

그 열망이 넘쳐서 터질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창세전에 두 분이 가지신 교제의 특징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두 분은 십계명과 같은 어떤 규칙이나 법을 만들어서 그것에 따라 사귐을 가졌나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고 친절하고 기뻐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상대방을 낫게 여기며 교제했을 것입니다.

그 교제 안에 들어올 사람들 역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수준이 하나님의 수준이 되어야 함께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나요?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수준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교제하는데 자발적으로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에덴동산의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 자발적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은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수고와 고난과 고통과 죽음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 영원한 지옥을 죄 값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도 큰 손실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이글거리던 영원한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인생목적을 망쳐놓은 사람을 쓸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죄 짓기 전의 아담으로 돌려놓기로 하셨습니다. 

아니 아담 이상으로 새롭게 창조하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동일한 수준으로 새롭게 창조하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피 곧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사람이 되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듣고 주님께로 돌아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범죄하기 전의 상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 상태를 회복한 것에 기뻐하는 상태에 머무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예전 상태로의 회복은 출발점에 다시 설 수 있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기 위해 예수님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동일하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과 동일하게 의롭게 되었고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동일하게 예수님의 형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동일하게 하늘에 앉혀졌습니다.

2:5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단지 구원받은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과 동일한 신분과 위치를 가졌습니다.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본래 사람을 만든 목적으로 향해 나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작품은 만든 이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아담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셨듯이, 이제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우리 믿는 자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가 되기 위한 우리의 행위를 선한 행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2: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선한 행위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직결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다르게 표현하면 무엇입니까? 믿는 자들 곧 지역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집이 되도록 우리가 힘쓰는 것이 우리의 선한 행위입니다.

2:20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21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22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으뜸 모퉁잇돌이신 예수님과 같은 재질의 산 돌로서 교회 곧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진 날이 언제인가요?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온 날입니다.

14:20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

 

실제로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온 그 날은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후 부활하신 날입니다.

20:21 이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니라.

22 그분께서 이것을 말씀하시고 그들 위에 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령]을 받으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위하여 첫 사람을 만드실 때, 아담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위하여, 숨을 내쉬어 하나님의 집을 이룰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들 제자들이 교회로서 하나님의 처소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2장에서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키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느냐며 표적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나요?

2: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

20 이에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 걸렸거늘 네가 그것을 사흘 안에 세우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그분께서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셨더라.

 

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헐렸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제자들로 이루어진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현재 하나님께서 사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당연히 예수님도 함께 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목적하신 아버지와 아들과 교회가 함께 교제하는 상태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이것을 누리도록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이것을 추구하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갈망이며 영원한 목적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1장과 22장에서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이루어진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 아담으로 실패한 것을, 마지막 아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은 에덴동산과 비슷할 것입니다.

 

22:1 또 그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내게 보여 주니라.

2 그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와 강의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그것이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고 달마다 자기 열매를 냈으며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가 그것 안에 있으리니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4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요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안에 있으리라.

5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등잔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 없으니 이는 []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로다.

 

우리가 거할 곳은 첫 사람 아담이 있었을 때와 비슷하죠. 특별히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의 왕좌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종들인 우리가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원 전에 아버지와 함께 얼굴을 보며 영광스런 교제를 한 것과 같이 우리가 그 교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21:22 또 내가 그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 하나님 [전능자]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성전이시기 때문이라.

여기서는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성전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교회로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교회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의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교회가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고 기도한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우리가 이것을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지금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집으로서 살아갈 때만이 맛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이러한 상태를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개인은 없습니다. 오직 단체적인 교회만이 가능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약 60년이 지났을 때의 7교회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각 교회에 칭찬과 책망을 하시고 각 교회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기는 자’에게는 어떻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칭찬이 하나도 없습니다. 온통 책망만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엄청난 약속이 있습니다.

3:21 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나와 함께 내 왕좌에 앉는 것을 내가 허락하리라.

여기서 이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그대로 믿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그러한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2 6절에서 우리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 사실만으라도 흥분되지 않습니까? 이것이 죽은 다음에 새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이 땅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듯이 우리를 본다면, 우리는 지금 하늘에 앉혀있습니다.

영적인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존재인 것처럼 우리도 영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차원에 계신 것과 같이 우리도 영적 차원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앉은 것처럼 우리도 하늘에 앉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듯이 본다면, 우리는 하늘에 앉힌 것에 걸맞는 삶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맛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보는 것이 신앙생활의 대원칙입니다.

 

요한계시록 3 21절 말씀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흥분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3:21 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나와 함께 내 왕좌에 앉는 것을 내가 허락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단지 하늘에 앉혀있는 수준이 아닌 것입니다.

아버지의 왕좌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아버지께서 앉아계십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은 어디에 앉아계십니까? 예수님의 왕좌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왕좌 곧 아버지의 왕좌에 예수님이 앉아 있습니다. (내 아버지와 함께 그 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이기는 자는 어디에 앉도록 하십니까? 예수님의 왕좌에 앉게 하십니다. (나와 함께 내 왕좌에 앉는 것을 내가 허락하리라.)

예수님의 왕좌는 아버지의 왕좌입니다. 

결국 아버지의 왕좌에 아버지와 아들, 이기는 자가 함께 앉는다는 것입니다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영원한 목적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이기는 자로서 이 땅에서의 생활 가운데서 아버지와 아들, 우리 자신이 하나의 왕좌에 함께 앉아있는 것에 걸맞는 삶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Written based on the surmon from the pastor at Glory Bapt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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