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재미있는게 없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입맛도 없다.
하는 것도 없는데 피곤하다.
나란 존재가 쓸모 없는 것 같다.
흔히 알려진 우울증 증상들이다.
홍콩에서 근무하며 1년 반 이상 강제 재택 근무를 하게 되면서 나에게서도 저런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껏 우울증 같은 건 남의 얘기인 줄로만 알았다.
이렇듯 우울증을 앓고 보니 왜 우울증이 '정신적 감기'라 표현되는지 알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활동량이 줄면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언어학자로서 특이점을 발견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들이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리서치 하던 중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어 소개한다.
63개의 인터넷 포럼 (6400명 이상의 멤버들)에 포스팅 되어 있는 글들을 모두 분석한 결과 발견된 내용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에는 크게 3가지 특징이 있었다.
1. 부정적 의미의 형용사/ 부사 자주 사용 (more negative descriptors)
첫번째 결과는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에서는 부정적 의미의 형용사나 부사가 많이 발견되었다.
'외롭다' '비참하다' 등 상황이나 감정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형용사와 부사 사용이 두드러지게 많았다.
2. 1인칭 대명사를 과하게 사용함 (overuse of first-person pronouns)
3인칭을 지시하는 대명사 (그 사람, 그들) 보다 1인칭을 지시하는 대명사 (나)를 훨씬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과도한 1인칭 대명사 사용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줄이고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더 쉽게 걸리는 것인지 아니면 우울증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 더 초점을 맞추게 하는 것인지 그 인과관계는 분명치 않으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뚜렷한 언어 특징 중 하나가 1인칭 대명사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부정적 의미의 형용사나 부사 사용보다 과하게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점이 우울증을 진단하는데 있어 좀 더 신뢰가능한 지표라는 것이다.
3. 절대주의자적 언어 사용 (presence of "absolutist words)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결과가 놀라웠다.
연구자는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로 이것을 꼽았는데 바로 "항상", "언제나", "완전히" "아무것도" 등 절대주의자적 단어 사용이었다.
이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을 왜곡하여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세상을 흑백으로만 바라보고 있음 (black-and-white view of the world)을 의미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포럼에서는 일반적 포럼의 글에서보다 50% 이상 이러한 언어들이 자주 사용되었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쓴 글들에서는 80% 이상이나 많이 발견되었다.
언어는 곧 그 사람을 드러낸다.
언어 생활이나 패턴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지금 어떠한 상태에 놓여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패턴들이 어떠한지 들여다 보자.
만약 저 3가지 패턴이 모두 두드러지게 보인다면 우울증 진단과 치료와 관련해 구체적 도움을 받아보길 권한다.
< 참고 자료 >
journal: https://journals.sagepub.com/doi/full/10.1177/216770261774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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