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쪽팔리다"
속된 표현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떤 상황에선 이 단어만큼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는게 또 있을까 싶어요.
어쩌다보니 저는 학부부터 박사 과정까지 계속 전공을 바꿔가며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첫학기엔 늘 '아무것도 몰라요'가 제 주제가가 되어 버렸죠.
그래도 한국에서 석사과정까지 공부할 땐 할 만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박사 과정은 달랐어요.
하루 하루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았습니다.
같은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온 젊은 미국 골리앗들은 이제껏 배운 내용이 있는데다 자기네 나라 말이니 얼마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지? 토론은 또 얼마나 잘 하구요.
기본적인 용어며 이론에도 익숙치 않아 그 모든 것들이 외계어처럼 들리는 저에게 그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평가를 받는 과정은 그야말로 쪽팔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업을 듣고 식사를 제대로 할 겨를도 없이 책을 읽고 논문을 보고 글을 쓰고...
아직 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인데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을 바라볼 때의 갑갑함이람...
가끔은 정말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더라구요.
그러다 결국 첫학기에는 쓰러지기도 했었고, 두번째 학기에는 몸에 마비가 오는 경험도 했었죠.
언제쯤 나도 저 골리앗들과 수업시간 토론하며 맞장 뜰 수 있을까?
늘 쭈글이같은 저의 모습에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제 안에 두 자아가 늘 싸우고 있었죠.
'너 언제까지 그렇게 쭈글이처럼 있을래? 모르는게 있으면 나중에 찾아봐야지 하지 말고 물어보고 네 의견이나 생각이 다르면 표현해!'
'아니야, 괜히 그러다 창피만 더 당하지. 그냥 조용히 수업만 듣고 나와.'
수업시간마다 내내 이러한 갈등을 겪던 어느날 또 제 안에 두 자아가 소란을 벌이고 있었어요.
늘 그랬듯 한 녀석은 저에게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설득했죠.
'이 질문을 해? 말아?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거 아냐?
그럼 다들 날 어떻게 생각할까? 쟤 아직 이것도 모르고 있었어?라고 생각하겠지?'
또 다른 한 녀석은 그냥 손들고 질문하라고 설득하고 있었어요.
'너 지금 모르고 지나가면 계속해서 모를텐데 박사년차가 더 올라가서 이걸 모르고 있는게 더 부끄러운 일 아냐?
그냥 지금 한번 쪽팔리더라도 알고 가는게 더 중요하지 않아?'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한 번 쪽팔리고 말자.'
어느 순간 제 손은 올라가 있었고 교수님이 저를 보며 '그래 네 질문이 뭐야?'라는 눈짓을 보내고 있었어요.
'헐, 이제 큰일났군! 일이 벌어졌으니 그냥 얘기해자'
저는 'This might be a stupid question' 이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다들 알고 있을텐데 미안! 난 아직 모르는게 많아서...
함께 하는 수업시간 너희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의 질문으로 지체하게 해서 미안..."
이런 마음으로 그렇게 말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거기서 제 말을 멈추게 하셨어요.
There is no such thing as a stupid question. Not questioning is stupid.
(어리석은 질문이란 없단다. 질문하지 않는 것이 어리석인 일이지.)
교수님의 저 말씀이 저에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마친 후 "That is a really great question"이라고 칭찬해 주시는데 날아갈 듯 기뻤어요.
그 이후 박사 과정 내내 공부하면서 "왜 그런거지? 진짜 그런거야?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비판적으로 사고하려는 노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어요.
무사히 박사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교수님께서 편지를 주셨습니다.
"넌 내게 가르침을 줘서 고맙다고 늘 말했지만, 내가 도리어 너에게 배운 것이 많았다는 사실을 넌 아마 모를거다."
그 문장을 본 순간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그 순간 제 쭈글이 시절이 떠 올랐기 때문이지요.
최근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며 쪽팔리는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늘 하던 것만 하는 사람들은 그런 느낌들을 좀처럼 경험할 수 없죠.
그런 사람들은 도리어 어디서든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고 우쭐한 기분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현재의 '나'와 작년의 '나'
둘 사이에 물리적인 1살의 나이 차 외에 다른 점이 있는지...
전 요즘도 새로운 것들을 배우느라 젊은 학생들 속에서 쪽팔리는 중입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만큼 배울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또 다시 쭈글이 같은 느낌이 드는 시간이지만 이제는 알고 있죠.
이런 느낌이 든다는게 역설적으로 내가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고 성장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이예요.
당신의 성장을 응원합니다.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 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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