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순, 연한 나뭇잎, 동물의 새끼, 아기
이들을 보면 무엇이 연상되시나요?
전 '성장'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언젠가부터 이들을 보면 괜히 가슴이 벅차지고 눈물이 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성적이 되는 것일까요?
그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성장을 볼 때면 저에게도 묻게 됩니다.
넌 저들처럼 성장하고 있니?
어제보다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하고 있니?
혼자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살고 있는 집에 생명체라고는 저 하나라는 사실이 문뜩 슬퍼진 날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을 비워두는 시간이 많은 제가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식물 두 개를 들여왔습니다. 솔직히 이름도 잘 모르겠네요.
예쁜 노란 꽃을 피우는 애는 노랑이라고 이름 붙이고, 다른 애는 초록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날마다 이름을 불러주고 물을 주며 돌보는데 어느 날 초록이한테서는 새로운 잎순이, 노랑이한테서는 작은 꽃봉오리가 보이는 거예요.
아주 연한 빛을 띠는 초록이의 잎순과 노랑이가 새로 만든 꽃봉오리는 기존의 잎들과 꽃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어요.
그 새순과 꽃봉오리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 너무 기특해한 거예요.
걔네들은 그냥 살아남기 위해 성장할 뿐이었는데 그 모습이 제 눈엔 왜 그렇게 기특하고 이뻐 보였을까요?
보이진 않지만 그 연한 잎순과 꽃봉오리를 내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을까를 생각하니 그 작은 식물들의 성장도 감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초록이와 노랑이의 모습은 저에게 '성장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했습니다.
'칠곡 가시나들'에 등장하시는 할머니들의 모습도 그래서 감동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제 각각 기구한 사연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들.
그 연세에 무엇을 배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경험하셨을까요?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저두 나이 들어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할 때 반복되는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이 나이에 내가 왜 이러고 있나? 그냥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편히 살자.'
어느 순간 제가 너무 싫어지고 한심하게 느껴져 자괴감이 극에 달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할머니들께서는 변화되고 있는 당신들의 모습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배움을 멈출 수 없으셨을 겁니다.
힘든 시간들보다 성장하는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추셨던거지요.
비뚤비뚤한 글씨체와 맞춤법도 틀린 그분들의 시가 그 어떤 문예가의 시 보다 절절한 감동을 주는 것은 그렇게 성장하기까지의 시간들을 우리 모두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리적으로 나이듦과 상관없이 인간은 성장할 때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구나!
그 모습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구나!'를 할머니들 모습을 뵈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정을 추구하거나 빠른 결과를 원하게 되면 불평이 따라오곤 했어요.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왜 이렇게 가도 가도 힘든 여정은 끝이 없나? 내 삶은 언제쯤 여유가 있어 질려나?'
이런 생각들은 어느새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누리던 즐거움을 모두 빼앗아 가 버리곤 했습니다.
긴 여행길에서 목적지에만 관심을 두고 언제나 도착하려나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면 지나가면서 만나게 되는 예쁜 풍경을 모두 놓치고 말죠. 그래서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배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The journey is the reward라는 말이 있듯 성장의 과정에서 이미 보상을 다 받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죠.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바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또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일상에서 아기들을 만나게 되거나, 산책하다 식물들의 연한 잎순이나 꽃봉오리들을 보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저에게 물어볼 거예요.
'넌 오늘도 성장하고 있니?'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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