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검다 하지만 나에겐 아름답단다.
너는 멀리 왔다 하지만 널 따라 나도 왔단다.
너는 나의 전부란다.
널 위해 날 주었단다.
그런 너는 나의 눈에
검으나 아름답다.
<검으나 아름답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의 검은 부분
세상 사람들 다 몰라도 나는 알고 있기에
그 검은 부분을 볼 때마다 내 자신이 싫어진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지워지긴 커녕 검은 부분은 커져가는 것만 같다.
그러니 더욱 더 나를 혹독하게 비난하게 된다.
'나이가 얼만데 아직 이 모양이야?'
반복되는 내 모습에 절망스럽다.
이런 상태가 사탄에겐 나를 흔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된다.
그의 거짓말이 어김없이 들려온다.
'거 봐. 아무리 오랫동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도 넌 변하지 않잖아.
그런 모습을 누가 좋아하겠니? ...
너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존재일 뿐이야.'
이런 속삭임이 나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내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 바로 바라볼 수 없게 한다.
거울에 검은 부분만 가득한 죄인이 비치는가?
무능력한 인간만이 덩그러니 서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내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가 중요하다.
'나'의 정체성과 존재가치를 가장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그 권위를 가지신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내 모습은 어떠한가?
하나님은 우리가 '그러할지라도' 사랑한다고 하신다.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자녀라 하신다.
그 사랑을 보이시려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물의 형태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이제 '너와 나 하나 되자' 하신다.
(요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우린 그런 사랑을 받는 존재다.
하나님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다.
그리고 나를 신묘막측하게 하셨다.
I =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그렇게 지음 받은 자가 나다.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 이것이 '나'의 유일한 정체성이다.
진정한 존재가치이다.
그러니 사탄의 거짓말에 속지 말자.
왜곡된 내 모습이 보일 때면 하나님께 나아가자.
아버지께 내 마음을 쏟아내자.
그리하면 곧 아버지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볼 수 있게 하신다.
왜곡된 모습만큼 아버지의 큰 사랑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게달의 장막에게 솔로몬의 휘장이라 부르시고,
밀타작하던 농부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부르시고,
마른뼈들에게 군대라고 부르시고,
죽은 소녀에게 자고 있는 아이라고 부르시고,
모두 떠난 삭캐오에게 내가 찾던 자라고 부르시고,
혼인잔치의 별 필요 없는 물에게 더 좋은 포도주라고 부르시고,
죄로 멸망 받을 우리에게 내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신다.
검으나 아릅답다 하신다. <Pag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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